쓰고 싶어, 써야 해, 쓰지 않으면 안 돼
근 6년만에 만난 S는 지금 내게 일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구나. 근데 대체.. 어디서? 라고 되묻진 못했다. 스스로 못 보는 무언갈 남들이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불만을 가득 안은 표정을 한 채로 출퇴근하는 날 지켜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 중 (거의 모든 것에) 가장 진심인 친구라 그 말이 더 생경했는지 모른다. 늘 모든 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장문의 카톡을 남발(?)하고, 자기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 같은 사람.
진심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 진심의 단초를 그만큼 더 발견해 내는, 아니면 없는 진심도 쥐어짜 내는 능력이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일에 진심인 지점은 있다. 일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더 그런 면이 드러났던 건 아닐까. 회사의 좋은 부분과 답답한 부분을 번갈아 설명하면서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라고 말한 데 감동받은 눈치였다.
오랫동안 나의 글쓰기를 지켜봐 온 그는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한두 달 전만 해도 내가 쓰는 글은 논문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눈도 안 비비고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갈 써 내려간다. 심지어 4년여 만에 다시 에디터가 되어서는 일할 때조차 쓰고만 있다(어느 정도 과장임을 밝힘. 브랜딩 전략 업무도 절반이다). 불과 몇 달 전의 내가 했을 법한 말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정말 다르구나, 하면서 엊그제 올린 콘텐츠를 떠올렸다.
회사에선 내게 출근하자마자 세 명을 인터뷰해 달라고 했고, 당연지사로 잘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긴장하기도 했다. 첫 인터뷰를 마치고서는 머릿속에서 글이 써지는 기분이었다. 야마(?)가 잡히니 완성도 금방이었다. 단어와 단어가 부드러이 이어지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역시 글은 돈 받고 써야 해. 더 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사람에게 글쓰기의 총량이 있다면, 지난 수년 간 내가 그것을 아끼고 모아온 것일까. 후루룩 쓴 인터뷰를 이곳저곳 공유하면서 든 생각은 ‘역시 나는 써야 한다. 아니.. 써야만 한다’였다. 역시 에디터인 지인 한 분은 그런 나를 보고 ‘높은 직업만족도가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만족하는 건 내 직업인가, 내 글인가, 글을 쓸 수 있다는 상태 자체인가.
S에게는 나의 쓰는 이유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얼버무림에 가까웠지만 그는 그 대답에서도 이유를 간절히 찾고 싶은 진심이 보인다고 했다. 강요된 진심(?)이어도 그래 보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네 가지 상태의 차이를 논했다.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고, 써야 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써야만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 위엔 어쩌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이런 상태를 이야기할 때는, 진심이냐 아니냐보다는 의지가 어디서 오느냐를 말해야 할 것이다. 위로 갈수록 더 깊은 물에 빠지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숙주가 되어 사랑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처럼, 어쩌면 나도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사실 방금 글을 쓰며 한 생각이다. 글쓰는 사람은 글의 숙주일 뿐).
쓰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하는 사람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소명 - 나는 일종의 허기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 에서 시작하는 사람 사이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스스로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쓰는 이유’를 찾는 일만큼이나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다.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출퇴근이 행복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분 뒤면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내 마음만 봐도 알 수 있다. S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내가 일에 진심인 것 같다는 그 말. 그 말을 왜 했을지 이 글을 쓰며 대~충은, 알게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가 나를 더 고민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