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이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Photo by Microsoft Copilot / Unsplash

“A는 단순한 OO가 아니라, XX입니다.”

이 문장을 볼 때마다 말로 설명 못 할 쎄함이 전해진다. AI가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탓이다. ‘무조건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는 더 없다. 글 하나 안에 이 형태의 문장이 두 번 이상 나오면 70~80%의 확신을 갖게 된다. 글의 전부를 AI를 활용해 쓰진 않았더라도, 상당 부분을 활용했겠구나 하는 추측이다.

이런 문장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억울할지도 모른다. “Not only A but also B”라는 문장을 직역한 느낌이 난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만큼 사람들도 자주 쓰는 문장이지 않은가. 한데, AI가 보통 어떤 방식으로 이 문장을 만들어내는지를 보면 확실한 차이가 보인다. 결론적으로, AI는 보통 단순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에도 ‘단순한 ~가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보통 이런 표현은 ‘익히 단순하다고 생각되지만 실은 단순하지 않은’ 것에 붙여야 의미가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정치는 단순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일상이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영혼이 세상과 나누는 가장 순수한 대화다”, “피드백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신뢰의 다리다.” 애초에 정치는 단순하지 않다. 글쓰기도, 피드백도 말이다. 글의 구조에 따라 물론 사용할 수 있고,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한다는 전제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다.

이 같은 문장들은 비유적이기도 하고 일견 논증적이어 보이기도 한다. 구조를 잘 짚은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장들의 ** 핵심 **은 [정치=일상], [글쓰기는 영혼과 세상의 순수한 대화], [피드백은 신뢰의 다리]라는 직유이다.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많이, AI에게 글의 양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이기에, ‘단순한 ~가 아니라’를 이토록 추가하게 된 것인가.

물론 AI가 이런 글을 만들어내게 된 데는 인간의 책임이 없지 않다. 저런 있어보이는 문장에 높은 점수를 줬을 것이고(AI를 학습하는 데는 인간의 피드백으로 점수를 매기는 강화학습 방식이 있다) AI가 끌어다 쓴 수많은 글에 저런 문장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일깨워야 하는(?) 자기계발서나 TED 강의 같은 곳에 이런 문장이 얼마나 많았겠나. 마케팅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글 중간에 한국어에선 잘 쓰지도 않는 대시(작은 거 말고 큰 거. 키보드에서 어떻게 넣는 건지 감도 안 옴…)를 넣는다거나 ** 이런 ** 마크다운 표시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건 아무래도 성의의 문제 같다. AI를 썼다는 사실을 알아도 문제가 없거나, AI가 썼다는 걸 잘 알린다면 실제로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닌가..?)

세 달 전 입사한 회사에선 다들 자연스레 AI로 회의록이나 자기 생각을 요약해 공유하고 있다. 문장이 깔끔하고 논리가 명료하다. 어떤 선택까지 도달하는 데 망설인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거칠었을 회의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저런 의사결정을, 저렇게나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꽃이 튄 회의 현장까지 회의록에 담을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기대하는 건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기록해야 하는 것 또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글을 쓰거나 회의 내용을 요약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앞으로는 AI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게 바보같은 일로 여겨지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니까, 미리 친해지는 게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쓴 글을 왕창 넣어주고 나 같이 써달라고 하는 훈련을 미리 시켜놓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AI를 활용한 글과 문장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건 별 수 없다. 자기 생각인양, 자기 논리인양, 자기 구조인양 만들어 와서는 명쾌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삐져나오지 않겠는가.

‘AI를 활용해서 만들었습니다’를 밝혀야 하는 시점이 오자, ‘AI를 활용하지 않았습니다’가 하나의 멋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도 정반합이 꿈틀거린다. 그 합은 무엇이 될까. 아마도 누가 썼느냐보다, 어떤 흔적을 남겼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쪽일 것이다. 명료함이 의심받고 더듬거림이 신뢰받는 시기를 잠깐 통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망설임을 지우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매끈하지 않아서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 앞 문단 굵은 글씨는 AI가 써줬다. 잘 쓴 글이고 교훈도 주는 것 같지만, 쉼표와 물음표의 망설임이 나타나지 않으니, 아무래도 매끈하다. 매끈해서 내 것이라고 하기가 망설여진다. 당분간은 명료한 사람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애매모호한 사람으로 남는 게 낫겠다. 아직은 이 경계를 계속 흐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