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방정식

장마 방정식
Photo by David Clode / Unsplash

장마엔 대비가 필요하다. 이미 비가 오고, 장마가 시작되고 난 뒤에서야 준비가 시작되는 것이라 대처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비가 쏟아지는 날에 집을 나서는 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신발은 물론이고 옷가지 하나도 신중히 골라야 한다. 회색 티셔츠면 조금 곤란해진다. 비에 젖으면 진회색(?)이 되기 때문이다. 우산 틈으로 파고드는 빗방울에 어깨가 진회색이 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젖어도 티가 안 나는 색인지가 선택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바지도 마찬가지다. 밑단이 살짝 젖거나 흙탕물이 묻어도 괜찮은 바지인지 가늠이 필요하다. 서늘하겠지만 반바지를 선택하는 건 둘 다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 사람같이 다닐 순 없기 때문에 우산도 잘 챙긴다. 다른 건 잘 안 잃어버리지만, 우산만큼은 1년에 한두 번은 꼭 잃어버리게 된다. 비싼 우산을 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게다가 손에 뭔가 들고 다니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작은 우산을 선호하게 되었다. 문제는 내구성이다. 휴대성이 높을수록 내구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가방에 넣으면 삐져나오는 못생긴 2단 우산을 들고 다니고 싶지는 않다. 바람에 뒤집어지는 우산을 들고다니는 건 참 모양빠지는 일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유연하게. 뒤집어져도 쉬이 부서지지 않는 유연성을 가진 우산을 사면 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경량 우산에 미쳐 있는 일본에 가면 그런 우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비오는 날 신발 걱정은 블런드스톤의 부츠를 산 이후로 없어졌다. 부츠만 150년을 만든 브랜드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긴 하지만, 게다가 땅이 하도 넓어 전 세계의 기후가 다 있다는 호주에서 탄생한 브랜드니까, 믿음이 가지 않는가. 신어본다면 그 믿음이 확신으로 변하게 된다. 구조적 튼튼함과 스타일의 자연스러움을 경험한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게 된다. 원래 안전화를 만들기도 했다니 말 다했다.

아, 아무튼 블런드스톤은 장화를 만들지는 않지만, 통고무를 활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장화와 같은 기능을 한다. 물웅덩이를 과감히 밟고 도하渡河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단 장화는 대부분 장화같이 생겼다. 나 장화요! 하는 탓에, 어어, 저 사람 장화 신었다. 근데 오늘 비 안오네 ㅋㅋ. 이런 눈길을 피할 수가 없다. (누가 그런 눈길을 보내나 싶겠지만 내가 그러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블런드스톤의 장점이라면 야심차게 장화를 신었다가 비가 안 오는 경우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츠입니다만!? 저는 그저 멋을 내려 한 것입니다. 정도로 정리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니 스타일이 맞으신다면 장화 대신 블런드스톤을 사시길… 정가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나도 벌써 4~5년째 꺼내 신고 있다.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증거다.

여전히 신발을 파고든 빗물 때문에 양말이 젖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상술한 재미들이 있는 탓에, 비오는 날을 그리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비가 온다며 툴툴거리는 회사 동료들 옆에서 전 비오는 거 좋아요, 라고 말하는 순간에 나는 이런 나만의 변수들을 떠올린다. 특이한 분이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가도 나만의 재미로 남겨두기로 한다. 어떤 이에게 성립되는 공식이 나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을 때가 있고, 반대도 당연히 있다. 공감을 바라기보다는 그냥 내 세계에서만 맞는 법칙이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설득하거나 공감을 바랄 필요가 있나. 같은 비가 내려도, 어떤 변수를 넣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지는 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