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칠 정도로 여름
여름만큼 계절 그 자체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계절이 있을까? 어떤 문장이든 뒤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해진다는 말이 밈이 될 수 있었던 건 여름이 가진 에너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개소리라도, 여름이었다면, 대충은 이해되고 용서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이지 않았을까. 여름은 그런 계절이니까.
여름에 대해 생각할수록, 도대체 왜 여름은 이곳저곳에서 낭만화되는가, 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다) 영화나 문학 속 여름에는 싱그러움과 깨끗함이 있다. 심지어는 그 이상의 생동감과 자유, 고귀함까지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여름은 어떤가. 습기와 멈추지 않는 땀, 음식물쓰레기 냄새와 열대야… 어째서 우리네 여름엔 찝찝함과 불쾌함, 시큼함과 후텁지근함, 불평과 투덜투덜만 남아 있는 것인가? 내가 여름을 잘못 보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왜 경험되는 여름과 재현되는 여름엔 이런 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
어떤 이에게 여름은 낭만이 될까? 몇 가지 층위가 있을 수 있지만… 논의를 확장하면, ‘여름에 쾌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물을 수도 있다. 냉정할 정도로 현실적인 접근을 하자면, 자원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가장 쾌적한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전기세 걱정 없이 에어컨을 틀 수 있는 사람, 아니, 일단 에어컨이 집에 있는 사람. 단열이 잘되는 집에 사는 사람. 시원한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 아메리카노 가격을 보지도 않고 시킬 수 있는 사람. (수박 맛이라든가 열대과일 맛 나는 에티오피아 무산소 내추럴 어쩌구 원두로 핸드드립을 시킬 수 있는 사람!) 더운 여름엔 시원한 나라로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사람. 겨울도 비슷하겠지만, 여름은 이런 경제적 격차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목숨이 오가는 계절이 되기도 하니까.
노동하지 않는 사람도 아마 여름의 불쾌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것이다. 나는 적어도 영화 속 여름에 노동자들이 나오는 걸 본 기억은 없다. 여름은 방학, 축제, 휴가의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은 항상 일정 수준의 노동 뒤에 붙어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해야 할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든가, <더티 댄싱> 같은 작품을 보고 있자면, 나도 휴가를 떠나면 사랑을 만날 수 있겠구나 싶은 망상(?)을 하게 되지만,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역시 휴가를 떠나보면 쉽게 알게 된다. 나는 여름 휴가를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처지인데 말야. (구조주의자답게 이런 이야길 가장 먼저 늘어놓았다.)

구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대비를 선명히 찾고 또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 여름의 낭만이 더 가깝다고 본다. 폭염 뒤에 쏟아지는 비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 흠뻑 젖은 땀 정도야 냉수마찰 한번이면 된다고 보는 사람, 집에 도착할 때까지 탈 듯한 갈증을 참았다가 냉장고에서 갓 꺼낸 맥주 한 잔에 날려버리는 사람… 불쾌를 통과할 줄 아는 사람이 쾌를 잘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여름은 이래저래 감각이 과잉되는 계절이다보니, 나쁜 감각에서 좋은 감각으로 오가는 진폭이 더 크게 느껴지고, 불쾌를 이겨냈을 때 잠시 동안 경험하는 강렬한 대비가 우리 마음속에 깊이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은 훨씬 더 ‘몸’으로 경험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봄이나 가을, 심지어는 겨울까지도 특정 모습의 풍경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여름은 감각이 먼저다. 알람이 따로 필요 없는 매미 소리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눈에 보이는) 열기, 비 온 뒤의 냄새, 아이스크림을 베어문 뒤의 두통 같은… 여름은 보는 계절이 아니라 만지고, 듣고, 맡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계절이 된다. 몸으로 통과하는 계절이라 이름하면 훨~씬 낭만적 표현이겠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몸으로 통과해 각인되었으니 잊을 수 있으랴.
그 모든 불쾌를 지나 마음이 환해지는, 뚜렷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은 낭만의 계절이라기보단, 선명의 계절이라고 이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불쾌와 쾌의 거리가 가장 멀어서, 그 진폭을 낭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건 아닐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키보드 아래 팔뚝과 책상이 불쾌하게도 쩍쩍 달라붙는다. 으 짜증나. 나의 못남을 이리도 쉽게 마주할 수 있는(마주해야만 하는) 이 계절… 지나친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