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연구하고 싶었던 것
2년 반의 학위 과정과 연구와 논문은 잘 마무리했으니 더 이상은 다른 이야기를 붙일 필요가 없다 싶지만, 원래 해 보고 싶었던 연구 주제는 따로 있었다. ('후회에서 시작하기'는 인간의 고유 능력이다.) 논문 쓰기에 대해 고민할 때만 해도 조직문화 담당자였기 때문에, 조직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과 메시지 특성에 따라 구성원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는지 보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실험보다는 당시 다니던 회사라든지, 안 된다면 어떤 회사라도 ‘진짜 회사’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싶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단순한 진단도 아니고 실험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회사가 있겠는가. 남부끄러운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질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업계에 아는 사람은 많은 편이지만 그만큼 디테일한 부탁(?)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그도 그렇지만 내가 퇴사하고 싶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연구를 디자인하고 가설을 세울 때는 이미 무적無籍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무언갈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어려웠다. 논문 쓰겠다고 회사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방향을 틀고 경로를 재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문화보다는 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채용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하는 쪽으로. 실험 또한 조직 내 구성원들 대신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면 풀Pool을 구하기가 쉬웠다. 내 주변만 해도 60~70명은 쉽게 모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쓰기가 쉬웠다는 건 아니지만… 결과 데이터를 받고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해보면 진짜 내가 알고 싶었던 것, 진짜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것이랑은 조금 멀어져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부끄럽다거나 내가 쓰고 싶은 걸 아주 못 썼다는 건 아니다. 얻은 것이 많다면 굉장히 많다. 덕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심지어 논문까지 쓴 채용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석사 학위 하나랑 논문 하나 있다고 전문가라고 취급받는 게 뭔가 죄스러운 맘까지 있는데, 또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만큼의 탐구 없이 자기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오만한 자보다는 낫지 않은가. 지금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내 학위와 논문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 팀장님은 내가 읽어보라고 준 논문을 아직 한 장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할걸’보다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는 게 나을 것이다. 박사를 한다면 마흔 전엔 해야 할 테니까, 적어두면 냉장고 구석에 넣어 둔 무르지 않는 재료처럼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을까 싶어 끄적여두어야겠다. 우선은… ‘구직자’에서 ‘예비 입사자’, ‘신규 입사자’로 거쳐 오는 과정에서 겪는 메시지 인식 차이, 특히 예비 입사자일 때의 메시지 전달이 조직 평가에 결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연구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이런 주제를 왜 떠올렸느냐면, 입사가 결정된 상태지만 입사하기 전 상태가 굉장히 취약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물론 신입/주니어와 시니어의 상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살피는 것도 재미다). 나는 늘 경계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눈이 가는 편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이 문제는 조직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볼 것인지, 채용(외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볼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학술적 의미로서의 경계 확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채용 커뮤니케이션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심도 있게 다룬 논문이 없어서 영어 논문 읽으라 얼마나 눈알 빠졌는지 모른다. AI가 없었다면 난 학위를 딸 수조차 없었을 거야.
그 외에도 같은 메시지를 구직자일 때와 신규 입사자일 때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특히 메시지의 정보량이나 정서성이 차이 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보면 좋을 것 같고… AI 다루는 건 트렌드 따라가는 것 같아서 하기 싫지만 실제로 AI가 중재자로서 조직 내에서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현상에서 출발하면, 맥락이라든지 히스토리가 소거되기 쉬운 조직의 AI 기반 정보 관리 체계가 가져다주는 인식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 변화를 관찰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사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연구는 진행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일상 속에서 연구 주제를 찾을 수 있다는 건 의미 있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매일 해내야 할 과제가 산더미인데, 그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실 난 연구해야 할 사람이야’, ‘연구가 맞는 사람이야’라는 착각을 갖기 쉽고, 여차하면 부딪쳐 보기도 전에 탈출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모른다.
근데 아직까지는 일이 훨씬 쉬운 것 같다. 내 돈 수천만 원을 내고 고통에 시달리며 백수십 페이지의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반면에 달에 몇백 씩 꼬박꼬박 받으면서, 허먼밀러 의자도 주고, 점심값도 내주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나인데… 아직은 이쪽이 나은 것 같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사육당하는 것 같네.
일이란 자아 실현인가, 돈벌이 수단에 동원되는 것일뿐인가? 구직자들은 ‘이곳은 자아 실현의 장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접할 때 진정성을 얼마나 느낄까? 하고 싶은 연구가 하나둘 늘어만 간다. 어쩌면 나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철학을 연구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