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보며

지구 반대편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보며
Photo by Tong Su / Unsplash

그 길만 건너면 회사였다. 횡단보도 맞은편엔 ‘코스피 6000 달성’을 자축하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신호를 기다리던 남녀 셋이 현수막을 보더니 주식 얘길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직장인들(나도 포함)의 점심 시간 토픽은 늘 주식이라든가 부동산, 아니면 주말에 본 넷플릭스 드라마 정도에서 끝나니 그리 주목할 대화도 아니다. 주식 얘기라고 해 봤자 ‘그때 살 걸’, ‘사지 말 걸’ 아니던가. 아마 점심 먹는 동안에도 계속 했을 것이다.

에이. 방산주를 샀어야 돼.

초록불이 들어오고, 행인 셋은 나를 앞질러갔다. 발걸음이 뒤늦게사 떨어진다. 내용을 뜯어보지 않으면 전형적인 ‘그때 살 걸’인데, 나는 방지턱이라도 있는 듯 그 말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 주가 떨어진단 얘기가 나오세요? 저 나라 하늘에선 포탄이 수백 발 떨어진다는데.

차분히 정리하자면 전쟁의 참상 앞에서 무슨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 하느냐, 자기 이익 이야기가 먼저여서 되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주식 얘기 당연 할 수 있지. 부장급 아저씨들과 하하호호 이야기 나누려면 그래야만 할지도. 현 정부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트럼프를 욕하고 싶다면 꼭 필요할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계속된다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야기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뷰(View)에 미쳐 있는 미디어를 욕하자면 글 열 편으로도 모자라다.)

동료애나 가족애도 귀해지는 세상에서 인류애를 강조하는 것도 이상해 보인다. 여러분, 이란에서 초등학생 백몇십 명이 목숨을 잃었대요. 예루살렘에선 포탄 파편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답니다. 이게 전쟁의 참상입니다! 그래서 내 주식은요? 기름값은요? 모든 것이 파편화되는 세상이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손 안의 기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으니 그 연결감을 연대감이라고 곡해하는 일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이들과 접촉하지 않아도, 아주 편하게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기에 화면 속 저들이 나와 같은 존엄성을 지녔다고 생각되기 어려울 따름이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배 십수 척이 파괴되었고, 정유 공장이 폭격을 맞았고, 탄도미사일이 1000발 남았고 따위의 뉴스를 들었다. ‘주식 브리핑’이라는 제목의 메일은 전쟁 소식을 가장 먼저 다룬다. 몇 명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느냐 대신에 파란색 숫자와 빨간색 숫자가 지면을 채운다. 유가 폭등, 글로벌 유동성 지속, 같은 말을 듣고 있자면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매끈한 화면을 보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에게 전쟁이 남 이야기같이 느껴지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싶다.

누가 죄인인가.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오를 방법이 투자밖에 없다는 현대 한국의 뭇 직장인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 죄. 그런 직장인들 보면서 ‘진짜 인류애 모자라네. 그런 말이 나오냐’ 생각하며 우쭐거리는 스스로가 요상하고 미워서 이렇게나 긴 글을 쓰게 만든 죄. ‘국방부’를 ‘전쟁부’로 만들더니 기어코 전쟁을 벌이고 제 나라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중동 지역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죄. 비난의 화살이 향해야 할 곳은 분명해 보이는데도 나는 구구절절 미운 맘만 늘어놓고 있다.

어쩌면 횡단보도 앞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랄 것이다. 요동치는 주가 보다는 안정적인 게 나을 테니까. 자기 주식이 다시 오르려면, 전쟁이 끝나고, 유가가 안정되고, 트럼프가 뉴스에 덜 나와야 하니까. 그러면 늘 비슷하고 평화롭던 점심 시간이 돌아오겠지. 너한테만 추천하는 종목인데… 그때 샀으면 이만큼 올랐어. 아, 저도 살 걸 그랬어요. 나야 그런 대화를 나누진 않겠지만,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건 이하동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어서 두 손을 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