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던 것을 읽고 쓰던 것을 쓰자는 마음

읽던 것을 읽고 쓰던 것을 쓰자는 마음

독서 모임이라든가 글쓰기 모임을 계속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적어도 한 달에 책 한 권은 읽는 사람은 되고 싶고, 적어도 일주일에 글 서너 편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중요한 이유다. (덕분에 쉽게 달성하고 있다.) 다른 이유들도 많다. 그중 가장 큰 건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할, 혼자서는 만들지 못할 의외성을 얻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돈을 더 내 가면서 스포티파이를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 의외의 노래들을 계속 가져다 주니까?

혼자서 책을 읽는다면 늘 비슷한 사회과학 서적을 사보거나 조금은 철 지난 한국문학을 사보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는 왜 알고리즘에 지배당하는가?>같은 학술 서적이나 <바다거북 서커스>와 같은 장편소설 말이다. (사실 이 두 권의 책 제목은 내가 방금 지어냈다. 진짜 있을 법한 제목을 짓는다고 시간이 좀 걸렸다)

사기도 많이 사기 때문에 나를 노려보는 책들은 여전히 있다. <페이크와 팩트>라거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는 늘 나의 ‘다음 책’ 후보지만 한 번도 손에 쥔 적은 없다. (진짜 있는 책입니다) <철학의 쓸모>도 마찬가지. 철학은 쓸모 있을지 몰라도 이 책은 내게 쓸모가 없네, 하는 농담을 절로 한다. 꽉 들어찬 책장을 보면 기뻐야 하는데 왜 한숨이 나오는가. 나는 나를 이렇게나 제한하기 때문에, 나를 벗어난 선택을 하기란 정말 어렵다.

매일같이 아침에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내 계획과 늘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 전날 밤 무조건 엊그제 본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고 해 놓고는 삶의 의외성을 만드는 일들에 대해서 쓰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지만 아침 글쓰기 하나조차 계획대로 못한다면 대체 계획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함께 책을 읽고, 같이 글을 써야 한다면 ‘내가 원하는’ 책만 읽거나 ‘쓰고 싶은’ 글만 쓸 수가 없다. 우리 독서모임은 6명이 한 권씩 책을 고르고,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읽게 된다. 정말 읽기 싫다면 의견이나 티(?)를 낼 수는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잘 없다. 글쓰기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일단 늘 쓰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자리에 앉아도 글이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맘속에서 손끝으로 먼저 나오는 건,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은 문장이지 쓰고 싶은 주제였던 적이 별로 없다. (글을 읽고 쓰다보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

지난 독서모임에서는 <산토끼 키우기>를 읽었다. 내용은? 정말로 산토끼를 키우는 내용이다. 책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이 책을 서점에서 봤거나 SNS 광고에서 봤다면, 거들떠나 보았으려나. (애초에 나는 광고의 타깃이 아니었을 것이다) 환경에 관심이 많고, 수질 연구를 하고 있는 선배가 함께 읽자 하지 않았다면, 그저 토끼 먹이고 재우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펴보기나 했을까.

그렇지만 ‘고작 토끼 키우는’ 그 책에서 나는 존재와 존재가 어떻게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중할 수 있는지, 우리가 자연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 또 다양성에 대한 나의 이해가 얼마나 야박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그 책, 매력적이지 않은 제목을 지닌 이 책에서 말이다. 독서모임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이 책이 말하는 좋은 주제들을 곱씹어보지도 못하는 그저 그런 아저씨로 남았을 것이다! 난 여러모로 멋진 아저씨가 되고 싶다.

번역가는 역자의 글 처음에 이런 문장을 썼다. “언제나 내 삶에서 가장 멀고 가장 낯선 이야기를 번역하려고 노력한다. 오랜 세월 해왔던 일에 안주하거나 정체되지 않고 일을 통해 내 삶의 용적을 조금이나마 넓혀 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저자의 글이 아니라 역자의 글에서 내 맘과 똑같은 문장을 발견한 건 이제와 생각해보면 조금 웃긴(?) 일이긴 하지만 뭐 어떤가. 나는 내 삶의 용적을 조금 넓혔고 그걸 또 여러 방식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읽던 것을 읽고 쓰던 것을 쓰자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안 하던 짓하기, 관성 거스르기는 결심과 체력이 필요하니 에너지가 없을 땐 피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우연을 멋들어진 방식으로 만나고 싶다. 주어진 데이터나 정해진 정보를 요리조리 조합해 나에게 추천되는 알고리즘보다는, 내가 가진 정보는 완벽히 무시하고, 고이 내어 오는 자기 취향들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계속 이런저런 모임들을 기웃거리나 싶다. 내 삶에서 가장 멀고 가장 낯선 이야기를 만나려면 별 수가 없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