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했을 때 얻은 것들
펜싱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뭐라도 좀 하기. 그게 운동이면 더 낫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몸이 불고 일 생각이 멈추질 않아 일만 하다가 죽겠거니 싶었을 때 시작한 운동이었다. 살을 빼겠다든지 건강해지겠다든지 그런 고려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그냥 했다. 주말에 찾아둔 펜싱클럽에 주중 체험 수업을 신청하고, 첫 체험한 날 두 달치 개인 레슨을 끊었다.
이제는 펜싱을 시작한 지 벌써 만 3년이 넘었다. 흔한 취미(?)가 아니다 보니 펜싱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어째서 펜싱이냐, 귀족 스포츠 아니냐(?), 운동은 많이 되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건 아니지만 명분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이유를 얼기설기 만들어 붙여보기도 했다. 투기(부동산 투기 말고. 싸우는 운동)를 해보고 싶었다든지, 나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든지, 하는 말들은 일부 진실이지만 완전한 진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별 생각 안 하고 시작한 건 또 있다. 팟캐스트가 대표적이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했을 뿐인데, 스스로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시작한 이유와 계속해야 할 이유를 줄곧 요구한다. 일주일 내내 주제를 고민하다가 일요일 두어 시간을 들여 녹음까지 하는 건 너무 수고스러운 일 아니냐면서, 돈이 되느냐(그놈의 돈 ㅠㅠ)고 묻는다든지, 그 정도면 뭐라도 얻거나 벌어야 하지 않느냐든지 말을 붙인다. 참견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지만,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별다른 이유(혹은 멋드러진 이유)가 없다보니 민망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삶의 큰 줄기를 형성한 것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시작했던 것들이다. 펜싱이 그렇고, 팟캐스트가 그렇고, 모라클도 그렇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걸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드립백으로 내린 아메리카노를 한 잔 하고 책상에 앉으면 정작 정신이 말똥해지는 걸 보면서 확신했다. 나도 나를 전혀 모르는데, 합리나 논리에 앞서 선택해야 하는 것들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 속 싯다르타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사색과 기다림, 단식’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허나 책을 몇십 장 넘기면, 그중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싯다르타를 보게 된다. 그속에서 나를 본다.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인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 지금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 중 그 잘난 머리로 이것저것 따졌다가 성공했던 건 얼마나 있을까. 내 주식계좌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냥 샀던 주식은 엄청 오르고, 일일이 따져가며 사 본 주식은 곤두박질쳤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
사람은 행동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습관이 있다. 편견이나 사고의 흐름에 따라, 2~3초 정도의 짧은 판단으로 그냥 했던 것들이라도 나중에 가서는 이유를 말해야만 한다. 이건 그럴듯해 보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사후적으로 합리성을 만들어내는 뇌의 특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하고, 그럴 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 오른쪽에 있어서 골랐는데, 대단한 취향이라도 있어야만 할 것 같아서 말을 붙이고 붙인다.
도전이라든가, 용기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거창해진다. 이 또한 그럴듯한 이유가 되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용기 있다는 평가, 도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보면 잠시 우쭐하다가도 이내 부끄러워진다.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인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난 그냥 했을 뿐인데. 누군가에겐 그게 용기로 보이는구나. 남들의 해석까지 막을 순 없지만 그에 휘둘려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냥 했을 때 얻은 것들을 생각해 보자. 그냥 했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다. 세상 모든, 많은 사람이 그냥 해볼 필요가 있다. 그냥 해보면 포기하기도 쉽다. 죽을 각오로 임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시작한 별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만두는 데도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다. 싯다르타가 괜히 그랬겠는가. 집을 나와 고행도 겪어 보고, 세속에 흠뻑 젖어보기도 하고, 온갖 쾌락을 즐기다가, 한순간에 모두 버리고 뱃사공이 되길 선택하고, 기생과 낳은 아들 하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해 내내 괴로워하고…
싯다르타는 그 모든 경험들 뒤에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결과를 바라고 뛰어든 게 아니었을 텐데도 말이다. 나도 그렇게 되려나? 그건 내가 결정하고나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냥 해보면 알게 될 테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 이래야 ‘그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