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세요"라고 말하지 않기
지난 금요일에는 건강검진이 있었다. 분명 2년 전에 했을 텐데도 오랜만을 넘어 새롭다 느껴지는 것은 안 하던 대장내시경을 했기 때문이다. 보통 만 40세가 넘어서야 받는 걸 권장하는 검사라고 하니 유난스럽긴 했다. 이를 위해 운동할 때도 안하던 식단(?)을 해야 했고, 미끌거리는 약을 2L나 먹어야 했는데 내시경이야 수면이어서 힘들 것도 없었지만 가장 힘든 것은 약 먹기였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꺼내니 뒤가 네모나게 뚫려 있다. 찍찍이로 붙여 두게 되어 있고, 웃옷이 길기 때문에 불상사는 면할 수 있다. 괴상한 모양의 바지를 보고서 잠시간 현타가 오기도 했지만, 먹은 약이 아까워 군말없이 검사에 임했다. 검사를 위해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다. 다행히도 장은 문제 하나 없이 말끔했다. 늘 발견되던 만성 위염은 그대로였지만…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다니 현대 의학은 정말 대단해, 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나섰다. 검사 결과는 2주 뒤에 모바일로 보내 준다고. 나오는 길에는 붕어빵 담아야 할 것 같은 종이봉투에 담긴, 짜먹는 죽을 두 개 건네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의 없게 이게 뭐야. 본죽이나 비비고 죽 정도는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어제 3시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 배고파 죽겠는데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게 나으려나 생각했다.
건강검진만 하러 가면 왠지 지능이 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건 그곳 안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숨 쉬라고 하는 대로 숨 쉬어야 하고, 말하라고 하는 대로 말해야 하고, 누우라는 대로 누워야 하고, 움직이라고 할 때까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정해진 번호와 경로를 따라 퀘스트를 깨는 게임 캐릭터같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 정도면 스스로를 꽤 주체적인 편으로 평가하는 쪽이겠지.
생각해보면 2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건강’이라는 단어만 봐도, 이게 얼마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의 도덕이나 이상으로 적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나는 습관처럼, 어쩌면 남들보다 월등히 많이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 왔는데, 건강하지 않은 것을 불완전한 삶이나 노력하지 않는 삶, 심지어는 비도덕적 삶, 게으른 삶으로 여겨 온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됐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가장 공고해졌을 것이다.)
자기 건강의 최선을 추구하는 삶이 모조리 문제적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모든 건강 문제가 모조리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지곤 한다. (이런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면 모든 주장을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 같은 무력함이나 게으름을 느끼긴 하지만) 건강의 주요 인자는 운동이나 음식, 생활 습관이기도 하지만 유전적 요인이나 주거 환경, 소득 같은 것이기도 하다. 노오력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방궁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건강 문제는 차별과도 직결돼 있다. 장애인이나, 비만인 사람들, 만성 질환자 등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기준으로 많은 것이 구성된 사회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있다. ‘쾌적한 사회’의 초점은 건강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들은 늘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없는 건 차별 그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차별을 불러오는 ‘건강제일주의’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건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잘 사는 조건일 수 있지만 잘 사는 것 자체여서는 안 된다. 건강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부터는 건강하세요, 라는 인사를 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다. 축복이나 격려의 말 보다는 건강주의 사회에 복무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럼 어떤 끝 인사를 해야 하는가? 자연스레 따라 붙는 생각이다. [감사했습니다]라고 하기엔 감사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고, [또 봬요]라는 말은 앞으로 안 볼 사람에게 괜한 희망(?)을 심어주지는 않겠는가 싶기 마련이다. 지금은 [안녕하시길 바랍니다]라던가 [평안하세요] 정도가 적합하지 않은가 여기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제 바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참 어렵게 산다. 이래 놓고서 건강검진에서 빨간색으로 ‘주의’라든가 ‘위험’이 뜨면 한없이 불안해 할 것이고, 운동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고, 뭐라도 할 것이다. 그런 것없이 말끔하다면, 하나의 훈장처럼 여기고, 나 건강하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지도 모른다. 사람이 이토록 연약한 존재라는 건, 내 머릿속만 들여다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