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되기

서울사람-되기
Photo by Yohan Cho / Unsplash

지난주 서울 출신이 아닌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모두 저보다 어렸고 사회 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됐으므로 서울에 올라온 지 몇 년 되지 않은 이들이었어요. 얼마 전 왕십리로 이사를 했다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다음 이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주제가 대화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이사를 가장 많이 한 내게 다들 무언가 좋은 정보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비밀 같은 건 없는데 괜히 비밀스럽게 이야길 꺼내 보았습니다. “보통 잘 모르시는데 생각보다 XX쪽이 괜찮고…”

놀랍게도(?) 서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보통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전세든 월세든 계약이 2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괜찮은 집이라 계약 연장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이직을 하게 된다거나,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다거나, 직접 들어와서 산다는 등 변수가 많은 것이지요. 세입자는 늘 을이고 그것은 단군 이래 한번도 변한 적이 없는 일입니다.

저 또한 만 8년 동안 세 번이나 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첫 집은 해가 20cm 정도 드는 해방촌의 반지하였고, 두 번째는 지금 사는 장한평의 작은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재건축을 앞둔 빌라에 들어갔다가 보증금을 조금 떼 먹혔고, 네 번째에 오게 된 곳이 중랑천이 보이는 이 동네입니다. 처음으로 2년을 더 연장해 살고 있는데 2년을 살고도 이사하지 않는 것 자체가 굉장히 생경하고 어색하면서도 괜한 뿌듯함이 있었어요. 이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니, 나 성공했나? (월세집임) 그런 착각에 아주 잠깐, 빠지기도 했습니다.

(명절 승차권 예매하고 왔다. 20만 명의 대기를 뒤로한 채 성공 ㅠㅠ 서울 사람들은 이런 설움 모르겠지)

사회생활하며 만난 서울 사람들은 서울을 잘 몰랐습니다. (여기서 하나 밝혀두자면 경상도 출신인 제게 ‘서울’의 범위는 꽤나 넓었습니다. 분당이나 일산은 그냥 서울임.. 인천? 부천? 광명? 시흥? 전부 마찬가지.) 짧은 기자 생활 동안 서울 곳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서울을 빨리 익혔기 때문에 고작 집 주변 정도밖에 모르는 서울 사람들을 괜히 무시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서울에 자치구가 25개나 있다는 걸 모르는 서울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저는 그들보다 더 서울 사람처럼 보일 수가 있었을 겁니다.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게 딱히 칭찬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그것을 칭찬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알고 보니 다른 지역 출신이었을 때, ‘분위기가 서울 사람 같았다’거나 ‘서울말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꼬아 듣지 않고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디폴트값처럼 여겨지고 이야기되는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기도 하고(서울에 태어난 게 잘못임 ㅠ) 구조의 힘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죠.

cars parked beside road
Photo by Ann Danilina / Unsplash

이제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이사한, 본가가 있는 거창보다 서울에 더 오래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년수로 따지면 태어난 지역 외에는 가장 오래 산 곳입니다. 가족 없이 혼자 개고생(?)을 하며 살아 왔으니 그 밀도는 더 깊을 것입니다. 제2의 고향이라는 말을 쉬이 붙일 만도 한데, 생각이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어느 시인 말마따나 서울은 사람의 고향이 되기에는 너무 크고 뻔뻔한 도시입니다. 그 시인은 서울 출신이지만요.

저는 아마 영영, 완벽한 서울사람일 수 없을 것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명절 승차권을 예매해야 하는 그때.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도, 적어도 너댓시간은 걸려야 만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할 때. 저는 다시금 완벽한 지방 출신이 됩니다. 아무리 서울시민이 된 지 8년이 넘었더라도, 청약에서 서울시 아파트에 1순위로 넣을 수 있더라도, 버스 노선을 대충 알게 되고, 노선도를 보지 않고 지하철을 탈 수 있더라도요…

끝이 없고 창백하고 뻔뻔하고 이 거대 도시에서 연명하려면 오늘도 우로보로스처럼 꼬리를 무는 출근길 지하철을 타야만 합니다. 발 딛고 먹고 사는 이 서울을 사랑해버릴 순 없을까 하다가도 사랑할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매섭고 차가운 도시는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 출신 시인이 하는 말보단 시골 출신 직장인이 하는 말이 조금 더 그럴듯하지 않나요? 적어도 서울에 대해서는 제가 하는 말이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