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신학교로 간다

이렇게 된 이상 신학교로 간다

10년 전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느꼈던 벽을 요즘 인간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무소치라는 AI 밴드의 노래를 커버하는 인간들이 꽤 있다는 게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AI가 만든 음악이 ‘좋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건 1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제는 따라 불러 올리고 싶은 수준의 것이 됐다는 것이다. Seedance의 이미지 제작 성능이나 Astra의 디자인 성능을 보고 감탄하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고 해야 할까… 놀라워하는 게 더 이상 놀랍지가 않다.

어제는 우연히 "YOU’RE NEXT”라는 사이트의 링크를 발견하고는 이것저것 직업들을 검색해 보았다. (이거 지금 보니까 제목부터 무섭잖아? 다음은 너야.. 이런 느낌) 마케터, 세일즈, 에디터, HR… 이 사이트를 만든 의도를 알순 없지만 어쨌거나 가장 빠르게 대체되는 것은 ‘프롬프트 엔지니어’이고 가장 오래 걸리는 직업은 ‘신부(성직자)’라고 되어 있다. 무려 30년 5개월이 걸린단다. 이렇게 된 이상 신학교로 간다(?).

YOU’RE NEXT — AI가 당신을 대체하기까지, 몇 년 남았을까요?
직업 이름만 치면 5초. 754개 직업 · 확정일 기준 카운트다운 · 친구와 비교.

그런 생각도 잠시, (사고사나 병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30년 5개월이면 어차피 내 남은 생애 안에 들어오는 기간 아닌가. 신학교로 가서, 신부나 목사를 한다고 해도, 30년 뒤라면 대체되겠구나.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든 언젠가는 대체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되지 않을 것을 고른다는 관점으로 무언가 선택한다는 건 퍽 불행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려나?

역시나 하고 싶은 걸 해야겠지. 오늘 대체되든 내일 대체되든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어차피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아모데이나 저커버그나 순다르 피차이 같은 AI 종사자 아저씨들이 손을 잡고 오늘부터 속도를 조절하는 겁니다~ 라는 선택을 하거나 트럼프와 시진핑이 대동단결해서 AI 기업들을 찍어누르지 않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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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정말 설교를 AI로 준비하는 목사님들도 많을 텐데 이걸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나라도 할듯) 아주 오래 전 독일의 로봇 목사를 본 기억도 있고, 독일 한 복음주의 대회에서 AI로 예배를 진행했었다는 이야기를 봤던 기억도 난다. (독일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까..) 성직자가 오랫동안 대체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대체되려고 걸어들어가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나도 글 쓰거나 전략 기획할 때는 최대한 AI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꽉 막힌 것 같이 느낄 때는 여지 없이 에이전트를 불러낸다. 잠깐 일어나서 산책을 하든지 아이스크림을 사먹든지 하며 고민해볼 수도 있는 일인데, 가장 쉽고 편하고 심지어는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주는 AI가 있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하게 되는 것이다.

AI가 넓혀준 가능성과는 별개로, 우리가 좁히고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지 세심히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반대 급부를 보려는 노력은 늘 어려우니까. 삶은 어려운 쪽으로 가야 하는데.. ㅠㅠ 이럴 때일수록 AI는 절대 못 만들 것 같은 노래를 들어야겠다. 인간성이 가득차서 주체할 수가 없이 흘러넘치는 그런 노래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