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일하기 전에 읽지 말 것
사상 최저가! (아님)
역대급 혜택! (애매함)
사장님이 미쳤어요! (돈에 미침)
마케터로 일하는 K는 ‘최저가’라거나 ‘역대급’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적극적인 거짓말까진 아니고, 마케팅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약간의 과장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쵸, 그쵸. 나도 매번 그러한 '일 윤리'를 늘 되뇌기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에 떨어져 나가곤 한다. 자기가 한 말과 글들이 자기 행동을 한두 번 넘어서다가 종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그렇게 된다.
지금까지 의문 없이 잘했잖아. 질문을 많이 하는 게 좋은 직원이라 하면서도 의문이 많은 사람을 좋은 직원으로 보진 않는다.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했던 일을 투박하게 요약하자면 그런 의문을 잠재우는 일이었다. 이게 맞나? 하는 고민들을 계속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게 맞다’는 말을 언어와 매체만 바꿔서 계속해야 했다.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일을 무심코 갈 수 있게 명분을 제공하는 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일을 하면서 내 의문이 제일 커지고 커졌던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조직문화를 더 이상 하지 않지만 여전히 비슷한 구석은 남는다. 마케터나 디자이너처럼 언어를 매체에 태워 보내는 사람들이라면 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도 납작하게 보자면 ‘우리 회사 좋아요! 오세요!’를 어느 때는 세련되게, 어느 때는 투박하게, 대부분은 포장해서 전하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야근이 겁나 많아요’를 ‘다들 책임감 있게, 열정적으로 일해요’라고 써야 하는 것이고 ‘업무 강도가 굉장히 세요’를 ‘몰입해서 일하는 문화’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거 하라고 돈을 받는 거고, 더 잘하라고 회사가 준 허먼밀러 위에 앉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누구는 속인다고 하겠지만, 누구는 ‘수사’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 자르듯 잘리는 문제는 아니다.
K와 대화를 하다가, 급기야 공리주의와 의무론 같은 철학 이야기도 나왔다. ‘사상 최저가’가 아니긴 하지만 할인율이 높은 건 맞고,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 조직의 매출을 높일 수 있다. 단기적인 상황에 국한하면, 결과치만 보는 공리주의 입장에선 ‘선’이라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걸 칸트가 본다면? 무조건적 ‘악’이다. 과장이 지속되는 행위를 절대 보편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광고가 거짓과 과장이라면(어쩌면 그런 시대를 살고 있나?), 광고라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진부한 접근이지만 ‘악의 평범성’ 관점에서 물을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는 나의 전문성이라든지 회사의 성장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맥락을 보는 관점과 사유가 없다면, 내 일이 구조적으로 어떤 결과에 기여하고 있는지 절대로 알 턱이 없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굿 플레이스Good Place>는 특별한 사후세계 이야기를 다룬다. 그 우주 어딘가에는 인간의 모든 말과 행동을 쪼개 점수를 매기는 회계팀이 있다. 오늘 내가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는 행위도, 드립백으로 커피를 내려 마신 행위도 모두 평가 대상이다. 이 커피가 공정무역을 거쳤다면 양(+)의 점수를 받겠지만, 재배 과정에 아동의 강제 노동이 있었고, 유통 과정에서 지나치게 탄소 배출이 많았다면 음(-)의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 점수가 쌓이고 쌓여 플러스라면 ‘굿 플레이스’에, 마이너스라면 ‘배드 플레이스’에 가는 식이다. 내가 오늘 마신 커피 브랜드 이름과 성분표만 봐서는 내가 좋은 점수를 받을지, 나쁜 점수를 받을지 알 수가 없다.
<굿 플레이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에 대해 묻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인간의 선택과 행동엔 이미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개입돼 있다는 모순, 그리고 나도 그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함께 지적하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도 그렇다. 매출이라는 결과값으로만 말할 수도 없고 고객 만족도라거나 리뷰 평점이라는 왜곡된 수치로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내 일에 당당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다. 우리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에 점수를 매긴다면 그 점수는 음일까, 양일까? 어쩌면 돈벌이하는 모든 회사들은 음의 점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 점수를 매겨야 하는 거 아냐?
일할 때 나는 행복하다. 다만 괴롭기도 하다. 책임을 진 채로 일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일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여전히 무겁겠지만 전자를 택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주식만 걱정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지는 않은 까닭이다. 불인 줄 알면서도 뛰어드는 것이 인생이랬던가. 그 모순 때문에 내 삶이 더 나아갈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아니라면 타 죽어 버리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