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번아웃이 오지 않게 조심해!

AI 번아웃이 오지 않게 조심해!
Photo by Aerps.com / Unsplash

클로드 없으면 일 못 해요. 돈까스를 먹으면서 한 말이 부끄러워졌다. AI에만 의지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 싶어서가 아니고, ‘클로드 외에 다른 AI 툴을 못 다루는 사람처럼 보일까봐’였다. 이게 AI FOMO인가? 어디서는 벌써 AI 번아웃 이야기가 나온다. 일하다 오는 번아웃과 마찬가지로,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나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묻게 되고, 내적 동기를 상실하고, 멀티태스킹에 허우적거리다가 내가 일의 병목이 된다… 잠깐, 이것도 내 이야기?

요즘 매일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은 클로드 코드에게 ‘나 오늘 뭐 해야 해’라고 묻는 것이다. 머릿속에 대충 들어있기는 하지만 나의 캘린더와 할 일 관리 툴, 노션, 어제 나눈 대화들을 종합해서 각 프로젝트별 진행 단계를 정리해 주는 기특한(?) 녀석, 오 나의 비서님. 어제 아침엔 30분 정도, 클로드 API 오류가 있었다. 하루 태스크를 스스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데(원래부터 스스로 했던 것이라는 사실은 까먹고), 메모장에 제대로 써놓고도 무엇이 빠지진 않았을까 마음 졸였다. 괜한 불안감에, 오류가 해결되자마자 ‘나 오늘 뭐 해야 해’를 입력한다. 다행히도 크게 다르지 않네.

의존의 뒷면엔 불안이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 현상을 ‘AI Brain Fry’라고 표현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과부하와 정신적 소진을 말한다. 이 현상은 AI 에이전트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아지면 좋아질 수록 더 강해진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특히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결과물들을 검증한다는 게 쉬울 리가 없다.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내 앞에 주어진다고 하면 로봇이 아니고서야 괜찮을 수 있겠는가.

지난 목요일 오후의 크리에이티브 세션은 내 상황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유명 디자인 에이전시 창업자인 시니어 디자이너님이 회사에 오셔서 강의했다. 그는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기자이너(기획자+디자이너)’이면서 ‘개자이너(개발자+디자이너)’이기까지 했는데 이를 가능케한 것은 ChatGPT와 클로드와 나노바나나와 바이브 코딩을 할 수 있는 기타 등등(이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AI 툴들)이었다. 한 시간 동안 본인의 작업물과 그걸 만든 과정을 우다다다 보여주셨는데, 숨은 창의성이 꿈틀대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벽을 느끼기도 했다. 넘사벽이란 옛말이 적확하다. 동료들의 반응이 절로 궁금해졌다.

내가 있는 부서는 ‘크리에이티브 디비전’이다. 디자인 부서에 내가 속한 커뮤니케이션팀이 더해져 있다. 말인 즉슨 우리 팀 두 명 빼곤 다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가져다주는 재미도 여러가지지만, 예전에 다니던 컨설팅 회사나 테크 기반 회사들과는 AI 사용은 물론이고 수용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클로드 코드 이야기를 꺼내면 아는 사람이 잘 없는 것만 해도 그렇다. 어머, 모르세요? 세상이 이렇게 난리인데! (이세계에선 사실 내가 FOMO 유발자!?)

세션이 끝나고 동료들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현타가 온다"고 말했다. 자기가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는 이 결과물을 저 사람이 클릭 한 번과 입력 몇 번에 만들어낸 결과물과 비교할 때 엄청난 격차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건 그도 이미지 생성 툴이 처음 나왔을 때 매일 아침 수천 장을 하나하나 눈으로 골라가며 소위 ‘노가다’를 했다는 사실이지만... 우리 머릿속에 남은 건 그런 노력들이 아니라 멋쟁이 디자이너님이 바이브 코딩으로 만들었다는 100개의 웹사이트다. ‘힘 빠진다’는 말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나도 이미지 생성 공부해야 하나, UX/UI도 이젠 쉽게 해준다는데, AI를 감독하고 그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할 수 있으려면 기본 상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망할 놈의 탐구심은 AI와 만나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 아직 번아웃은 오지 않았지만 일에 잡아 먹히는 걸 걱정할 시대는 이제 지났고 AI에게 먹힐까봐 걱정하는 게 기본값이 되다니. 일자리는 물론이고 정신머리까지 빼앗길까봐 마음 졸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 졸이는 순간 이미 번아웃은 시작되는 걸까? 희망을 가지자는 말 정도로 AI 항공모함 같은 이 시대의 뱃머리를 돌리기는 힘들다. 당장 내일이면 또 어떤 툴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힘을 믿자’거나 ‘AI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말도 허울뿐이라고 느껴지니까. 막연한 희망이 주는 가능성의 고통은 버리고 그저 오늘을 살 힘이나 내봐야겠지. 앞 문장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대사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 언젠가 내 뇌나 신체가 기계로 대체되어 싸이보그가 된다고 해도, 나는 희망을 버리고 힘낼 수 있을까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누군가 코딩을 잘해 주길 바랄 수밖에!